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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 이야기

안녕~~~친구



40년전, 1979년인가

남편의 직장 발령이 대구지점이여서 2년간 대구에서 살아야 했던 적이 있었다.

내려간지 얼마후 지점장이 서울로 발령나고 남편이 지점장 대리로 우리가 사택으로 들어갔는데

몇달 지나서 새로운 지점장이 내려 오느라 우리는 사택을 비워줘야 했다.


새 지점장 가족이 바로 내려오지 못하고 우리도 새 거주지를 구하지 못해

부득이 새 지점장은 보름동안 우리집에서 하숙을 하게 되었다.

자신이 지점장이 될줄 알았던 남편은 새지점장이 내려온다고

그 서운함을 직원들 데리고 술 마시며 풀어 대느라 집에는 늦게 들어 왔고

제 시간에 퇴근한 새지점장 대접은 고스란히 내 몫이였다.


보름후 지점장 가족들이 이사오고 우리는 아파트에서 함께 지낼수 밖에 없었다.

그 가족에게는 안방을 내주고 우리는 작은방에서 살고 밥도 같이 해 먹고...

그 당시 우리애들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이고 그 집의 두 아들은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 서로 이사기간을 제대로 맞출수 없을때였다.


그렇게 일주일을 함께 지내다 우리가 다른 아파트를 얻어 이사를 하고

이사한 후에도 두집은 잘 어울려 다녔다.

지점장부인은 나랑 동갑에 순서울사람이라 서로 친하게 지냈다.


80년도에 우리가 먼저 서울로 올라오고 그집도 서울로 올라 오게 되어

우리는 은평구, 그집은 잠실에 살았슴에도 서로 왕래하며

두집이 함께 여행도 잘 다니곤 했었다.

성격이 깔끔하고 정확하고 깍쟁이였던 그녀와 나는 거의 매일

두시간씩 통화하며 수다를 즐기기도 했었다.


우리집이 풍비박산이 나고 몇년후 그녀는 뇌졸증으로 한쪽이 불편해졌는데

그때 하나님 영접하고 신앙을 갖게 되었다.

남편으로부터 모진 핍박을 받던(신앙때문에) 나를

오히려 나무라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던 그녀가

그나마 신앙을 갖게 된것이 얼마나 기뻤는지.....


2005년도 내가 미국 가기 전에 하남으로 이사한 그녀를 만났었다.

그녀가 80년도 우리집에 오면서 갖다 준 군자란 한뿌리를 잘 키워

매년 꽃도 피우고 이집 저집 나눠 주기도 했는데

자기집에는 군자란이 없다기에 다 자란 군자란도 갖다 줄겸 해서

은평구에서 그 먼 하남까지 그녀를 만나러 갔었다.


그 후 그녀와 가끔 전화만 하고 나는 나대로 그녀는 그녀대로 살다보니

서로 언제 연락을 했었는지 기억에도 없다.


헌데 그녀가 그제 소천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잘 살고 있으려니...했건만 대장암으로 더이상 손쓸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어제 큰애를 데리고 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그녀를 보내고 왔다.

그 깔끔한 성격때문에 나한테 연락도 안한 그녀

뇌졸증으로 병원에 있을때도 누구의 문병도 거절했던 그녀.

결국 그녀와 나는 2005년도 그때의 모습만 기억에 남게 되었다.


물론 천국에 가면 그녀를 볼수 있겠지만 생전에 한번 더

같이 웃고 떠들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텐데 하는 미안한 마음이다.

조문하고 돌아오는 길, 먼저 내리는 큰애가 나를 한번 안아 주고 내린다.


찾아보니 그녀와 둘이 찍은 사진이 한장도 없고

가족들이 함께 찍은 사진은 모두 애들집에 남겨져 있는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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