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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간의 미국생활

필라 이야기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미국을 향해 2005년 10월 30일 오전 인천공항을 출발하였다.

비자를 받기까지 참 많은 이야기들이 있지만 기회가 또 있으리라.

2004년도에 조카 민자가 난소암으로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중에 있어

병수발에 지친 언니를 도와주고 싶고 오랜동안 만나지 못한 민자와 긴 회포도 풀고 싶어

비자를 받자 마자 무리해서 비행기표를 끊었다.

민자는 나보다 네살이나 많은 조카이다.

어려서부터 쌍둥이처럼 자라 서로 정이 각별한데 결혼하고 곧바로 미국으로 이민을 가서

서로에 대해 소원해진 부분도 있겠지만 나이 들고 보니 옛정이 그립기도 하고

갈수록 병세도 깊어진다는 안타까운 소식에 하루라도 빨리 가 보고 싶었다.

 

그러나 민자는 나를 기다리지 못하고 내가 미국에 도착하기 일주일전에 소천하고 말았다.

열흘만이라도 빨리 비행기표를 끊었으면 좋으련만.......

민자를 보내고 상심해 있을 가족을 위로하고 사후처리를 하는 것으로 내 미국행 목적이 바뀌었다.

예전부터 나를 미국으로 데려가고 싶어했던 민자의 소원이 너무 늦게 이루어진것이다.

 

필라델피아는 뉴욕에서 두세시간 정도 내려가야 한다.

국내항공도 있겠지만 보통 교포들은 뉴욕공항과 필라를 다니는 셔틀버스를 이용한다.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항공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무료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50불을 낸다.

비행기시간에 맞춰 도착하고 떠나니까 필라의 교포들에게는 고마운 존재이다.

 

언니는 나의 첫 미국행이 걱정이 되어선지 송화(민자동생)를 데리고 뉴욕까지 마중을 나와 주었다.

필라에서 뉴욕까지 승용차를 이용하는데는 통행료도 많이 들고 길도 복잡하던데......

금쪽같은 큰딸을 먼저 보낸 언니는 워낙 강직한 성격이라선지 생각보다 좋아 보였다.

미국도착시간이 한국시간으로는 한밤중이라 연신 눈이 가물가물한데도 언니랑 이야기하며

길가의 예쁜 단풍구경하느라 한숨 안자고 필라까지 여행하였다.

 

인천공항 화장실에서

지방에서 올라오신 할머니 두분이 화장실에 들어 왔다.

한분이 볼일을 보고 나와 다른분을 기다리는데 그 다른분이 영 안나온다.

한분 "으째 아직 안나오여"

다른 한분 "오메 물이 안나오네~"

한분  "아따. 팍 눌르이쇼"

다른 한분 "눌렀당게? 요것이 돌기만 하고 물이 안나오여?"

한분  "팍 눌르란 말이여"

다른 한분 "눌러도 안나온단 말이여 오메 으짜까"

 

두분은 그냥 나가셨다.

변기옆에는 비닐커버 레바만 있고 물내리는 레바는 뒤에 있었는데...

 

필라로 가는 휴게소에서.

두시간에 한번씩은 화장실에 가야하는 생리작용을 처리하기 위해

송화가 휴게소에 나를 내려 주었다.

잠을 못자 머리는 빙빙돌고 눈은 가물가물...

화장실 찾아 들어가 볼일을 보고 물을 내려야 하는데

허걱!!! 눈에 띄는게 없다.

이것 저것 눌러봐도 찾아봐도 아무것도 없다.

이건가? 이건가?

그런데 물이 내려간다.

그럼 그렇지 어디든 만져서 내려갔겠지. 아!! 다행이다.

차에 오르고 송화한테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누르는게 없고 그냥 만지기만 해도 물이 내려가더라...

송화 하는 말.

"이모! 자동으로 내려가는거야..."

"응?"

레버를 눌러야만 물이 내려가는 화장실만 썼던 이 촌 아줌마.

미국 첫날부터 촌티 무지하게 내고 말았다.

 

묘지공원이 너무 넓어 갈때마다 헤매면서 찾았다.

비석을 세우기까지 묘자리를 잊어 버릴까봐 표시하느라 꽃을 꽂아 둔다.

조카사위와 언니의 모습. 

 

 

 

 

교회에서 부지를 구입하여 앞쪽으로는 해가 잘 들고 뒷쪽으로는 사진에서처럼 나무들이 서있다.

비석을 세우는 비용이 보통 싸게 해도 4-5천불씩 든다.

길눈 밝은 나도 이 자리를 찾아가려면 두블럭씩 헤매고는 했다.

미국은 묘지라고 해서 따로 뚝 떨어져 있지 않아 좋은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