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부산에 살다 구미로 거처를 옮긴 셋째올케가 서울에 왔다.
부산에서 혼자 살다가 작년 11월에 암수술한 후 아들네집으로 이사를 했고
3개월마다 서울에 와서 경과를 체크하기 위해 서울 둘째딸 집에 왔다는 전화.
전화통화는 가끔 했지만 얼굴 보기는 참 오랜만이다.
이사한 우리집에 꼭 와봐야 하고 화정에 사시는 육촌오빠도 꼭 뵈야겠다고...
육촌오빠와 돌아가신 셋째오빠와는 결혼전부터 대구에서 같이 사업을 했고
셋째오빠 돌아가신후에도 가끔 부산에 내려가 올케를 만났던 터라
두 집이 막역한 사이였기에 서로 안부가 궁금했었는데 지난번 나로 인해
전화통화도 할 수 있어 꼭 만나 보기를 원했다.
두 사람 다 암환자.....오빠나이도 많고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강이라
자주 만나는 것도 어려운데 기회 있을때 만날수 있어 더 반가울지도 모르겠다.
우리집에 들렀다가 화정역에 가서 육촌오빠와 점심을 하고
다시 우리집으로 와서 저녁때까지 이야기꽃을 피우다 갔다.
셋째올케는 나와 동갑이다.
스물한살 철모를 나이에 얼떨결에 셋째오빠를 만나 우리집의 첫 며느리가 되었고
한량이였던 셋째오빠의 극진한 사랑으로 삼남매 잘 키우며 살았는데
그만 오빠가 너무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한동안 우울증도 앓았었다.
지금도 올케는 웃으면서 얘기한다.
오빠가 다른 여자랑 산다해도 어딘가 살아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 소리에 나는 늘 핀잔을 주지만 애닯아 하는 마음이 고맙기도 하다.
그리고 토요일(3월 26일)
한 분 밖에 안남은 큰오빠를 함께 만나기로 했다.
큰오빠는 89세다.
우리집안의 부귀, 영화, 명예, 장수를 혼자 다 가진 분? 이라고 해야 할까?
이미 예전에 은퇴는 하셨지만 가끔씩 강의도 하시고 왕성한 활동가이신 분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에 90이 되면 한 학기를 맡겠다고 하셨다나?
지금처럼 건강하면 내년에 한 학기 정도는 맡을거고 년말엔 작품도 하나 연출할 계획이라고.
자기 관리가 뛰어나고 무엇이든지 완벽하게 하시는 분
고등학교때는 우리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셔서 나를 늘 긴장하게 하셨던 분
무거운 장남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지면서도 꿋꿋하게 자기성취를 이뤄 내시고
아직도 건강을 자랑할만큼 무엇에나 당당하신 분이다.
그래서 나는 큰오빠가 편하지 않다.
두 언니, 세 오빠 돌아가시고 큰 오빠랑 나만 남았어도 서로 잘 연락을 안한다.
셋째올케랑 조카랑 넷이서 영등포 타임스퀘어 한일관에서 점심을 하면서
옛날 얘기로 시간을 보내고 왔다.
오빠를 먼저 보내 드리고 나오면서 셋째올케가 하는 말
"고모야~ 큰아버지는 하나도 안늙으셨는데 고모랑 나만 늙었데이~~우리 관리 잘해서 건강하게 살재이~~"
큰오빠가 저리 건강하게 장수하면 어쩜 내 장례식에도 올지 모르겠다...라며 웃었다.
영등포는 내 고향이다.
태어나고 자라고, 고등학교 3학년때까지 영등포 중심에서 살았었다.
가물면 먼지포, 비오면 진등포...라고 했던 그 곳 중심 큰길가에
영등포에서 제일 먼저 이층상가를 지어 관리했던 우리집
대문이 세겹이였고 안채는 100평이였는데 아버지 심장수술후부터 가세가 기울어
군에서 제대한 큰오빠가 학교교사를 하면서 우리집 생계를 책임졌고
어찌어찌하여 내가 고등학교 3학년때 우리는 대방동으로 이사를 해야 했었다.
대방동에서는 결혼할때까지 살았으니 겨우 7년?
영등포는 어렸을때부터 시장골목, 학교 가는길, 샛강 둑길 등등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라 예전의 길이 궁금해서
나 혼자 옛날 집에 가보기로 했다.
지금은 영등포역 근처가 백화점들이 있어 번화한 곳이지만
예전에는 시장에서 신길동 가는 길이 가장 번화한 곳이였다.
그 길 가장 중간에가 내가 살던 곳이다.
가보니 어디가 어딘지 모르게 변해 있었다.
옛날 집이라고 짐작되는 곳은 원룸빌딩이 세워지고 있었는데
시장골목, 극장, 학교가는 골목, 집 등이 어느곳이 어느곳인지 헷갈린다.
큰 행길이라고 여겼던 찻길이 좁아 보이는건 내가 늙어서일까?
괜시리 혼자 왔다갔다 하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기억도 믿을게 못된다.
그나마 큰 길이 남아 있어 다행이랄까?
간판을 보니 순대골목도 있고 전통시장이라는 표시도 있다.
순대골목은 매일 학교 다니던 길이였는데
순대냄새 맡기 싫어서 빨리 뛰어 지나던 곳이다.
이 날은 피곤해서 큰 길만 보고 왔지만 다음엔 뒷골목들을 한번 가볼까?
옛날에 자꾸 마음이 가는건 정말 늙어서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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