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0일에 미국에서 조카 송화가 왔었다.
오십대중반이 가까운 아줌마지만 20대때 미국으로 가서 그런지
마음은 그냥 20대에 머물러 있는 조카다.
송화는 이민후에도 한국을 자주 다녀갔다가
이번에는 십년만에 한국에 오게 되었다.
각종 병이 많은 위험환자라 백내장이 좀 일찍 생겨 수술해야 하는데
미국에서의 개인보험료가 너무 비싸서 미국에서 수술하는것 보다
한국에 나와 수술하는 비용이 비행기값을 포함해도 더 싸다고
나오기로 결정했는데 마침 30년전에 했던 치아에도 문제가 생겨서
겸사겸사 병원치료를 받으러 나온 것이다.
내가 다니는 치과는 집에서 먼~ 수유리라 어쩌나....했더니
그래도 다니던 병원으로 간다고 해서 일단 치과에 가서 치아 하나를 뽑고
집에서 멀지 않은 안과에서 검사하고 오른쪽 먼저 수술
한 주 지나서 왼쪽 수술....그리고 검사...등의 일정을 하는 중에
그만 조카는 병이 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계속 토하기만 했다.
미국에서도 가끔 그랬다는데 그럴때마다 병원에 가서 주사 맞으면 괜찮았다고...
동네내과에 데리고 갔더니 약만 처방해주고 증세는 호전되지 않고
왼쪽눈 수술하러 갔더니 안과에서 근처내과를 소개해주어
가서 영양제 맞고 또 약 처방해 줘서 왔는데 그후로도 며칠을
계속 토하고 먹지 못하고 옆에서 보는 사람이 더 답답할 정도였다.
미국병원에 전화해서 주사와 약의 이름을 알아두기까지 했는데
그후부터 조금씩 조금씩 증세가 완화되기 시작하였다.
치아를 하나 뽑았기 때문에 3주가 지나야 치과 치료를 해야하니
그전에 미국으로 갈수도 없고 두 사람 다 힘들었던 날들이였다.
어쨌든 조금씩 병이 나았고 미국에서도 미식가로 이름난 조카는
그동안 못 먹었던 한을 풀려는지 먹고 싶었던 것들을 먹기 시작해서
나는 인터넷을 뒤져 조카의 입맛을 만족할 만한 식당들을 찾아야 했다.
오랜동안 못 만났던 올케들이 마침 시간을 맞춰 송화까지 함께 만나
중국요리로, 장어로, 먹는것만 찾아 다니기도 했다.
덕분에 몸과 마음이 피곤한데도 내 몸무게는 계속 늘어났다.
백내장 수술도 깔끔하게 끝내고 안경도 여러개 맞추고
이 치료도 예쁘게 본인이 아주 만족할만큼 끝낼수가 있었다.
버스나 전철을 타지 못하는 조카랑은 계속 택시만 타고 다녔고
먹고 싶은건 무조건 사 먹어야 하는 입맛 때문에
백화점, 마트, 시장을 거의 날마다 들락 거리며 호의호식..
내 몸무게를 3Kg이나 불려 놓고
5월 21일 오전 비행기로 조카는 떠났다.
조카를 보내고 와서 지금까지도 나는 아직 정신을 못차린듯 하다.
혼자 지내다 내 방을 내어 주고 작은 방에서 지내려니
정돈되지 못한 생활이 내 정신까지 어수선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평소 내 생활은 생활대로 하면서 조카의 일을 함께 해야하니
애들 집에도 자주 못 가고 늘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기에
아직까지도 내 생활이 제자리를 찾지 못한 느낌이 든다.
사람을 섬기는 일은 정말 어렵다.
음식 먹을때 사진찍는 열정도 이젠 식었나 보다.
여기저기 많은것을 먹으러 다녔는데 사진은 몇군데 없다.
세올케들과 갔던 노량진 엘림성
(바쁘신 큰올케는 빠지고 송화는 못찍고)
*이 주에는 중국집에 세번이나 갔었다*
그릇까지 먹을수 있는 찹쌀탕수육
옛날맛 소스의 돈까스를 먹으러 성북동까지
물론 택시로 오가면서....
홍대근처에 있는 조개구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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