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다녀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적응이 되기도 전에
5월 15일부터 16일 이틀동안 국내 성지순례에 다녀 왔다.
목요 지도자반의 과정에 들어 있어서 이미 회비도 냈고
일정만 잘 소화할 수 있기만 바라는 마음으로 기다렸던 여행이지만
제주도 다녀온 후 채 피로가 풀리는 듯 마는 듯 한 상태에서
장시간 버스로 이동하는 일이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 교구(서대문 은평)에서 목요지도자반을 수강하는 사람은 9명
그 중 애들 걱정으로 함께 가지 못하는 두 사람을 빼고 모두 일곱명이
각자의 생활을 뒤로 하고 15일 아침 이른 7시 20분까지 교회에 모였다.
18교구 중에서 두번으로 나눠 1차로 우리가 먼저 가고
2차는 다음주인 23일 24일에 여행을 하게 되어 있다.
1차에 가는 모든 인원은 각 교구 목사님들과 전도사님들 수강생까지
70여명이고 대형버스 두 대에 나눠 탑승하여 출발하였다.
첫번째로 들른 곳은 용인 순교자 기념공원이다.
*용인 순교자 기념관*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추계리 산 84-1번지)
한국 기독교 백주년 기념사업협의회가 한국교회 백주년을 맞아
몇가지 기념비적인 일을 하였는데
첫째는 선교사들이 묻혀있는 양화진에 외국인묘지를 조성한 일
둘째는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 부부가
첫 발을 디딘 인천(제물포)항에 백주년 기념탑을 건립한 일
셋째는 맹인 개안수술을 위해 실로암 안과병원을 지은 일
넷째는 우리교회(영락교회) 모 권사님이 기증한 경기도 용인시 양지면 추계리의
임야 십만 오천평에 순교자 기념공원을 조성 360평 3층 건물로
순교자 기념관을 지은 것이라고 한다.
이 순교자 기념관에는 여러 역대 성서들과 신앙서적
그리고 순교자들의 존영과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순교자들의 존영이 전시되어 있는 말미에 작은 거울이 하나 있었고
그 거울을 보면서 위에 적힌 글을 한번씩 읽고 나가라고 하는데
그 말은 "나도 순교 할 수 있다" 이다.
거울을 보긴 했는데 마음 속으로만 그 말을 외우고 왔다.
아래는 토마스선교사의 순교
위는 백년 후 여의도 광장 집회
한 알의 밀알이 맺은 백년 후의 한국
그렇다면 2백년 후의 모습은 어떨까?
토마스 선교사의 순교그림
예배실
덥지도 차지도 않은 참 좋은 날씨에 서울에서 얼마 멀지 않은
조용하고 공기 맑은 순교자 공원을 걸어 나오며
순교자들의 고귀한 피흘림이 지금의 우리에게 얼마나 큰 감사인지 다시 한번 느낀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곳이지만 다음 일정이 기다리니 출발
덕유산휴게소까지 싸가지고 온 간식과 과일 등 커피를 마시며 간다.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기 때문이다.
우리 교구 목사님은 우리의 편리를 너무 봐 주시는 자상한 분이다.
대개의 교구들이 점심을 각자 집에서 준비해 오라고 했다는데
우리 목사님 말씀 "어차피 휴게소에서 먹는건데 한끼 사 먹죠..
아침에 일찍 나와야 하는데 번거롭게 뭘 도시락을 쌉니까?"
그래서 휴게소에서 적당히 골라 점심을 먹고
준비해 온 간식까지 푸짐하게 먹어도 시간은 남는다.
작년까지는 점심을 각자 준비해 오라고 해서 힘들었다는데
올해 새로 우리 교구에 오신 목사님은 정말 굿~~이다.
우리교회 부목사님들의 영락교회에서의 임기는 7년이고
각 교구에서의 임기는 보통 3년이라 이름 외울만 하면 옮겨야 한다.
올해 오신 목사님은 영락교회 오신지 6년차 이기 때문에
벌써 다른교회에서의 청빙을 물색하고 계시는 중이다.
그러니 올해 가실지 내년에 가실지 모르는 단기간이 될텐데
올 일년은 꼭 다 채우고 가시기만을 바랄 뿐이다.
목사님들에 대한 적응력에 있어서 영락교회만큼 훈련돼 있는 곳도 드물다.
그렇다고 목사님이나 성도들이 서로 소홀한 건 절대로 아니다.
다른 교회로 부임하실 때는 교구 여전도회가 모두 가서 축하해 드리고
도와야 할 부분이 있으면 교구내에서 의논해서 돕기도 하니
서로를 섬기는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교회의 전통이기도 하다.
점심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올라 3시간의 시간이 흘러 여수로......
*여수 애양원*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동 신풍리 1번지)
바닷물이 빠져 나간 곳곳 작은 배들이 묶여 있는 작은 포구 언덕에
손양원 목사 순교 기념관과 순교자 묘지 그리고 애양원 역사 박물관이 있다.
손양원목사님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만 막상 기념관과 묘지와
박물관을 두루 보고 나오다 보니 이렇게 자유롭고 평화로운 날들 속에서
옛이야기를 듣고 보는 듯 순교의 역사를 보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들인지 그 감격이 더해진다.
감히 닮을 수 없지만 닮아야 하는 옛 선조들의 숭고한 믿음의 현장을 보면서
나는 점점 더 작아지는 나 자신을 발견해야 했고 이제까지의 내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칭찬 받을만한 것이 없음을 새삼 깨닫게 되어 부끄럽기까지 했다.
손목사님의 실제 키 그대로의 모습
옆의 분 키도 그리 크지 않은데 손목사님은 더 작으시다
한센환자의 피고름을 입으로 빨아 내시는 그림
목사님보다 먼저 순교한 아들 동인 동신과
손목사님의 묘지
손양원 목사님의 10가지 감사 기도
1. 나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을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2.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 어찌 이런 보배를 주께서 하필 내게 주셨으니, 그 점 또한 주께 감사합니다.
3. 3남 3녀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아들, 장자와 차자를 바치게 된 나의 축복을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4.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다 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의 순교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5. 예수 믿다가 누워 죽는 것도 큰 복이라 하거늘, 하물며 전도하다 총살 순교 당함이리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6. 미국 유학가려고 준비하던 내 아들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감사합니다.
7. 나의 사랑하는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를 회개시켜 내 아들 삼고자 하는 사랑의 마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8. 내 두 아들 순교로 말미암아 무수한 천국의 아들들이 생길 것이 믿어지니 우리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9. 이 같은 역경 중에서 이상 여덟 가지 진리와 하나님의 사랑을 찾는 기쁜 마음, 여유 있는 믿음 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합니다.
10. 나에게 분수에 넘치는 과분한 큰 복을 내려 주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이 일들이 옛날 내 아버지, 어머니가 새벽마다 부르짖던 수십 년간의 눈물로 이루어진 기도의 결정이요
나의 사랑하는 나환자 형제 자매들이 나와 내 가족을 위해 기도해 준 그 성의의 열매로 믿어 의심치 않으며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순교한 두 아들의 장례식때 하신 말씀)
애양원 역사 박물관은 애양원이 이주한 후 한센환자들을 치료했던 병원 본관 건물이였다.
후에 현대식 병원이 근처에 세워지면서 역사박물관이 되었고 이 곳에는 예전에 쓰였던
의료기구들, 각종 서적들, 관련사진들이 전시되어 있다.
애양병원은 포사이드 선교사가 한센환자를 처음으로 치료했던 것이 그 효시라고 한다.
이제는 저녁식사 시간.
고등어조림 쌈밥.......(여수 음식치고는 기준에 못미친다)
다음은 돌산대교의 야경을 보기 위해 자동차들이 사정없이 달리는 행길을 건너
공원으로 올라갔다. (전도사님들의 보호를 받으며 건너는 가냘픈 여전사?들)
밤에 보는 여수의 야경.
시시로 색갈이 변하는 돌산대교의 야경을 앞에 두고
층계에 앉아 각 교구별로 재롱도 부리고 인사도 하고.....(이런 시간은 없어도 되는데)
흐린듯 했던 날씨가 개여서 보름달이 보이는 바닷가 숙소에 짐을 풀어
세명 혹은 네명씩 방을 배정 받아 샤워하고 수다도 떨고.
우리 일행중의 한 집사님의 경락마사지를 받으며 나는 으그그..를 연발
다섯명이 돌아 가면서 경락을 받고 몸을 풀며 하루를 마감했다.
재롱 부리는 전도사님들
남자 전도사님들은 교회밖에서 보니
그냥 청년들처럼 보인다(귀엽다)
오른쪽 여전도사님이 올해 오신 우리 전도사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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