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를 시작하기 전에 했었던 여행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뭐 요즘같이 여행이 쉬웠던 것에 비하면 여행이라고 이름하기도 어정쩡하지만
집을 떠나서 다닌것을 여행이라고 친다면 아직 몇건의 여행일기가 남아 있다.
굳이 이 지난 일들을 계속 올려야 하는 역사적인 사명?감에 사로잡혀
또 옛날 일을 쓰는 이유는 아마 단 하나...내가 늙어서일 듯 싶다.
지워져 가는 기억을 잠시 붙들고 싶기도 하고 그때의 추억을 가끔 아주 가끔 꺼내어 보며
사람들을 떠올려 보고도 싶고 어쨌든 내 삶의 한 페이지이기에
기록으로 남겨 혹 더 훗날 이 글을 보며 아~ 그런때도 있었지...할수도 있지 않겠나?
쓸데없는 노인네의 하잘것없는 푸념일수도 있다.
평생대학 우리반 어느 권사님은 성경을 열번이나 필사하시며 고난을 극복하셨다는데
나는 한번도 완성을 시키지 못해서 괜히 부끄러워지기도 하지만
그나마 내 공간, 나만의 소리를 마음따라 옮길수 있는 이 블로그를 사랑하기에
어떻든 내 기록을 계속 이어 가려고 한다.
(혹 오시는 분들께 드리는 죄송한 마음에 말이 길어졌다)
(글자크기를 크게 한건 내 눈이 시원치 않아서이다)
1999년 8월 6일
그 해 여름엔 비가 많이 왔다.
7월말 부터 계속 비가 쏟아져서 미리 약속했던 영월, 정선으로의 여행을 보류하고
그냥 하루코스로 정선만 다녀오자고 윤이엄마가 결정하고
강변역에서 아침 7시에 손여사 봉고를 타기로 했다.
새벽부터 서둘러 녹번역에서 이쪽 일행들을 만나 강변역으로 가서
대기하고 있던 봉고를 타고 강원도로 향했다.
(글상자 속의 글은 다녀오고나서 써둔 일기다)
강원도로 가는 길,
좌석이 좁아서 불편한 여행이지만, 시원한 신록을 보는것도 마음 설렐만큼 나는 답답해 있었다.
처음 가보는 곳, 제천을 통과해서 정선땅으로.....물어 물어 가는 굽이 굽이 산길,
물과 산이, 강과 산이, 이어진듯 끊어지고 또 다시 이어져서 하늘과 조화를 이루는 능선들,
넓이를 감당할 수 없어서 산을 타고오르는 배추밭들,
오대산으로 가던 강원도 길과는 또 사뭇 다른 풍경이다.
유홍준씨가 표제로 썼듯 강은 산을 넘지 못한다 했나
자연앞에 순종해 가는 강과 산의 조화는 마음을 편안케 한다.
비온뒤 강물은 좀 탁했지만 그 강물 바닥에 숨 쉬고 있을 열목어와 숫한 맑음이 보이는 듯 하다.
화암약수를 거쳐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물어 물어 "처갓집 식당"을 찾았다.
내비게이션없던 시절이라 불편하기도 하지만 재미있기도 했다.
산초를 넣은 담백한 두부전골을 맛있게 먹고 우리는 또 강을 따라 달렸다.
"임계면 가목리"
53세의 돈연스님이 터를 잡고 있는 곳
독일유학을 다녀온 서울 음대 출신의 첼리스트가 아이를 셋이나 낳으면서
세상을 등지고 정선에 들어 와 된장을 담그며 사는 곳이다.
세상을 피해서 그 오지로 갔는지 그건 모르겠지만 그들은 도도하게 그곳에서 세상을 불러 모으며 산다.
그들 나름대로의 삶이 있겠지만 그냥 순간적인 생각은 "부럽다"였다.
현재의 그들의 삶이 부러운건지, 그렇게 되기까지 결단의 순간과 그들이 가져야 했던 용기가 부러운건지...
부슬비 오는 그곳에서 그 많은 넓은 장독대와 수백개의 장독들을 뒤에 두고 실없이 사진 한장 찍어본다.
다시 길을 재촉하여 닿은 아우라지 강가
수많은 사연을 안고 흐르기만 하는 강가에서 또 많은 돌들을 안아본다.
큰 비 후라서 강물은 탁하지만 두 내가 만나 하나로 이루어짐에는
소용돌이만큼의 한과 슬픔과 기쁨의 사연들이 잠자고 있을것이고 그 사연은 강물이 흐르는 한 계속 될 것이다.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
강물에게는 머물러야 할 곳이 없음에도 저리 빨리 흐르는데
그 흐르는 강물을 따라 우리도 세월을 재촉하며 가야한다.
다시 고속도로를 달려 진부로 와서 "고바우식당"에서 막국수를 먹고
강원도 고랭지 배추 한단을 사서 오는 길은 막히고 막혀
수서역에 내려 전철 타고 집에 온 시간이 밤 11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