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과 일몰의 장관을 볼 수 있는 대청봉.
해발 1708m라고 하니 과연 동해에서 떠오르는 일출광경은 황홀할 것이다.
일몰 또한 그럴텐데 밤늦은 시간에 도착해서 안개비 내리는 아침을 맞으니
일출과 일몰의 장관은 상상으로만 만족해야겠다.
정상이다 보니 안개인지 구름인지 나즈막히 세상을 가리고 있어서
오로지 내 앞, 내 밑만 살피며 가는 하산길.
나는 다시 기다란 나뭇가지를 찾아 들었다.
안개비로 바위들이 미끄러워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등산화끈을 조이고 앞사람을 따라 한발 한발 내딛으며 비장하게 내려간다.
아침에는 제법 여유도 있어서 사진도 한장 찍었다.
저 아래 가리운 안개와 구름을 배경으로 하고.......
마침 소청대피소에서 자고 넘어 오는 젊은 아저씨들을 만났는데
나를 보더니 여간 반가워 하는 것이 아니다.
어제 올라올 때 내 모습이 정말 걱정스러웠다면서.
사진도 찍었으니 이제 또 출발해 봅시다~~~하고
가는 길, 아니 길이 아니라 바위계곡이다.
일명 죽음의 계곡이라는데 정말 죽을 맛이다.
행여 잘 못 발을 디디면 낭떠러지로 곧장 추락.....
다시 또 죽을 힘을 다해 조심 조심 한 발 한 발을 내딛었고
오로지 살아야 한다는 그 생각만으로 계곡을 넘어 희운각에 도착하면서
서서히 내 몸은 다시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 다음은 천불동 계곡이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철사다리 사다리 사다리......
절룩거리면서 나무 지팡이에 의지해서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추느라
나는 거의 울상이 되어 계단을 내려 왔고
계곡 아래의 그 깨끗하고 청아한 폭포며, 야생화며, 숲이며
이 모든것들은 내 눈에 들어 오지 못했다.
중간 중간 쉬기도 하지만 내려가는 길이라 별로 오래 쉬지도 않고
계속 내려가기만 하는데 어디쯤이 끝인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천불동 계곡을 벗어날 때쯤부터 나는 거의 실신할 상태가 되었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산길을 굳어지는 다리로 내려가려니
너무 너무 힘이 들어 호흡도 제대로 못할 지경이였다.
그래도 일행들과 너무 멀어지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내려가는데
어제의 동행인 최집사는 일찌감치 앞서 가고 인정 많은 김권사가
내 배낭까지 앞쪽에 메어 내 짐을 덜어 주며 친구해 주고 있었다.
김권사는 자기 배낭은 등에 메고 내 배낭은 앞에 메고
내 손을 잡아 주랴, 나를 위로 하랴, 나보다 더 힘들게 가고 있었다.
이제는 앉아서 쉬는 것도 힘들다.
앉았다가 다시 걸으려면 다리가 더 움직여지지 않아서
그저 넘어지지 않게 조심하며 내려 올 수 밖에 없었다.
중간 중간 물도 마시긴 했지만 몸이 그러니까 도무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배가 고픈건지, 목이 마른건지, 더운건지, 추운건지........
그렇게 아홉시간만에 비선대에 도착했다.
살아서 내려 왔으니 참 다행이다.
비선대에서 김권사가 커피를 먹겠냐고 하는데
나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고 했다
아이스 크림!
참 맛있게 먹고 다시 걸으려는데 온 몸이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뜨거운 커피를 마셨으면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나는 바보다)
일행중의 한 사람이 사혈침이 있다고 사혈을 해 주겠다고 한다.
열 손가락, 열 발가락을 다 찔러 대는데 피가 한방울도 나지 않았다.
이제는 평지를 걸어 신흥사까지 걸어 가서 버스를 타야 한다.
산길에서는 내려 왔는데 평지를 걸을 수가 없었다.
젊은 두 사람이 나를 양쪽에서 부축해서 겨우 겨우 걸어 올때
전화국에서 나온 듯한 어느 승용차가 눈에 띄어
환자가 있으니 버스 정류장까지 태워 주면 안되겠느냐고
일행 중의 한 사람이 부탁을 했는데 매정하게 그냥 간 차!!!!!!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다시 한시간을 걸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고
버스가 오자 서로 먼저 타겠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 속에서
겨우 올라 탔는데 사람이 많아 내 다리 한쪽은 저쪽에, 한쪽은 이쪽에
으~~~~감각이 없어 안 아플줄 알았는데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터미날 앞에서 내려 일행들은 행길 건너 예약된 식당으로 가고 있었다.
난 한발자욱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김권사에게 어서 가서 밥 먹으라고 자꾸만 얘기해도
김권사는 내 옆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한다.
"나 저 행길 건너 식당까지 못 걸어가, 그리구 밥도 못먹겠으니까
나 그냥 놔두고 얼른 가서 밥 먹어, 제발~~~~"
울먹이면서 김권사에게 말했지만 고집불통 김권사는
제일 가까운 식당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
식당입구에 계단이 하나 있는데 그 계단을 못 올라가서
김권사가 부축해 줘야 했고 화장실에 들어 가서는
중풍병자처럼 온 몸을 뒤틀면서 겨우 볼 일을 보았다.
공중전화가 있길래 집에 전화를 했다.
작은 딸이 받는데 내 딸 음성을 들으면서 울음이 터져 버렸다.
"엄마 왜그래, 무슨 일이야?"
"나 너무 아파.....아빠더러 터미날에 마중 나오라구 그래 흑흑흑..."
그렇게 간신히 밥 한 그릇 먹고 고속 버스 타고 서울로 오는 중에
김권사가 갖고 온 맨소래담 로션을 다른 사람 안 보게 다리에 바르면서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서울에 도착하니 남편이 마중나와 있다.
같은 방향 일행들 함께 태우고 오면서 난 아무소리도 못했다.
그 후 일주일동안
작은 언니의 수지침으로 치료를 받으며 온 가족의 놀림도 받고......
같이 갔던 일행들은 그 다음 달에 또 그 다음 달에도 등산을 갔었는데
나한테는 간다는 말도 하지 않고 자기네만 갔었다.
뒤에 보이는 바위산을 넘어 왔다.
바위산 중간쯤
저때만 해도 미소가 살았는데...
나무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내려 올 수 없었던 계단들
천불동 계곡의 단풍은 참 예뻤다.
그러나 내겐 아무 감흥이 없었다.
사진 찍는다고 해서 고통을 참고 찍었다.
저 많은 계단을 잘 내려 왔지만
아직도 계단은 끝나지 않았었다.
그래도 나는 대청봉에 다녀 온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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