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10월 29일
양재역에 오전8시 집합.
15인승 봉고를 렌트해서(여기사분) 강경에 다녀왔다.
이 봉고차를 그 후에 두번 더 렌트해서 단골이 되었다.
그날의 목적은 강경이지만 근처의 개태사와 관촉사를 먼저 구경했다.
옛날 기억을 더듬어 보니 오빠들이 논산훈련소에 들어가 있을때
엄마따라 면회갔다 오는 길 무지무지 큰 돌 부처를 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바로 관촉사의 은진 미륵이였던가 보다.
개태사는 태조가 창건한 절로 여기는 철확(솥)이 유명하다.
철확은 절에서 쓰던 큰 솥으로 지름 3m, 높이 1m, 둘레 9.4m이며
절의 전성시에 장(醬)을 끓이는 그릇으로 사용하였다.
지금 같으면 솥만 찍어 올텐데 솥은 잘 안보이고 집과 사람만 보인다.
그나마 나는 보이지도 않는다.
관촉사 은진미륵
저 앞에서 열심히 절하시던 엄마가 생각난다.
다음은 강경 미내다리
(강경천의 채운교가 있는 강둑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시멘트로 만들어진 다리 옆으로 작은 미내다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전국 교역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는 강경포구가 있던 곳으로,
이 강을 ‘미내(渼奈)’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한 까닭에 ‘미내다리’라고 부릅니다.
강경미내다리(미내교, 渼奈橋, 충남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 541번지, 충남 유형문화재 제11호)는
강경천의 채운교가 있는 강둑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시멘트로 만들어진 다리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 다리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전국 교역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는 강경포구가 있던 이 곳에
긴 돌을 가지런히 쌓아 3칸의 무지개 모양를 만들고,
그 사이마다 정교하게 다듬은 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렸습니다.
다리의 강둑쪽 중간쯤에는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동물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데,
눈은 마치 장승의 눈과 같고, 코는 뭉툭하며, 얼굴 양옆으로 귀모양과 갈기가 있습니다--새전북신문에서)
지금은 위 사진처럼 잘 관리하고 있는가 보다
아래 사진에 우리가 갔을때는 잡초가 우거져서
이게 무슨 역사적 가치가 있을까 싶었던 그런 곳이였다.
우리 일행의 리더 윤이 엄마는
여행책에서 가는곳의 정보를 프린트하고 묶어서
우리들에게 나눠주고 차 타고 가는 동안 공부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스마트폰만 켜면 다~~나오는 정보들....
구경 다 하고 강경장에 풀어 놓고 시간을 주고 다시 모여보니
혼자 들고 갈수 없을만큼 장을 봐가지고 온 우리 일행들....
그래서 기사분은 우리 모두를 집근처까지 바래다 주고 가야했다.
나는 뭘 샀었나.....
낙지젓 한병 샀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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