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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 이야기

어느 오후에

 

겨울비가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니 빗소리가 들린다.

자장가를 듣는듯 다시 눈을 감고 기분좋은 늦잠을 잤다.

 

엊그제 오래간만에 통화한 숙희가 물었다.

"재밌니?"

".......... 어....재밌어."

"그래. 그럼 됐지 뭐."

"너는?"

"엉?.ㅎㅎㅎㅎ 나도 그래"

 

재미 있을일은 내 나이 스물다섯에 이미 끝난일 아닐까?

결혼한 이후부터 우리 나이 육십이 훨씬 넘어선 지금

그 질문은 우문일수밖에 없지 않을까?

 

십수년전에 남편을 잃고 대신 여행매니아가 되어 세계 각국을 다녔던 숙희.

지금은 그나마 체력이 달려 지난번 중국여행 다녀온 후로

한달 넘어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던데.......

두살된 손주의 재롱도 조금씩 눈치가 보인다는 그녀는 뭐가 재미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둘다 헛웃음을 흘렸을까?

 

모처럼 한가한 토요일에 난 드라마 재방송 보느라 한낮을 보냈다.

"시크릿 가든"

애들이 하도 재미있게 본다길래 1회부터 쿡...에서 찾아 보았다.

혼자 킥킥 웃으며 재미있게 보았다.

 

그러다 배가 고파 김치볶음밥을 해 먹고 커피 한잔을 만들었다.

원두로 내리기는 귀찮으니까 그저 한 숟갈의 커피를 탔는데

왠지 심심할거 같아 눈에 띄는 꿀가루 한 스푼을 더 타서 마시니

아주 재미없는 커피맛이길래 그냥 쏟아 버리고 다시 한잔을 탔다.

이번엔 설탕을 한숟가락 넣었다. 커피의 재미를 위해서......

 

재미 있냐고?

그래, 드라마는 재미 있더라.

 

어제 금요공부 끝나고 티타임이나 짜투리시간에 몇몇이 앉아

우스개소리를 하며 깔깔대고 웃었는데 그게 재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순간에 불과하다.

 

웃을수는 있어도 즐겁거나 기쁘지 않다면 그건 진정한 웃음이 될수 없다...라고

많은 사람들이 많은 개그맨들이 많은 책들이 이야기하고는 했는데

여기서 또 되풀이한다면 나는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다.

 

감사일기를 적으면서 나는 정말 감사하고 있는지 의문이 생겼다.

감사해서 감사하는게 하니라 감사하기 때문에 감사가 생긴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나는 재미있지도 즐겁지도 않은 가운데 있다.

 

하지만 감사해야 한다는 걸 알기에 감사한다.

어쩌면 감사도 훈련받고 단련되어져야 하는건지도 모른다.

 

아침의 비는 그치고 찬바람이 분다.

겨울이 와야 봄이 오기에 이 겨울을 감사해야 한다.

말로만 지어내면 감사할 것이 너무 많다.

 

지금, 이 말같지도 않은 말들을 써 내려가는 이 시간도 감사하고

재미와 즐거움은 없어도 감사라는 단어를 기억하는 것도 감사하고

음악과 함께 차 한잔을 할수 있는 나만의 세상에도 감사하고.....

 

이런 주저리 주저리를 읽어 줄 소수의 독자에게도 감사하고

손만 뻗으면 먹을것이 쌓여 있으니 감사하고

리모컨만 켜면 재미를 보여주는 TV가 있으니 감사하고

듣고 싶은 노래 아무때나 들을수 있는 컴퓨터가 있으니 감사하고

밀린 숙제하듯 몰아쳐서 성경책 읽을수 있으니 감사하고

하루쯤 아침기도 안한다고 야단치는 사람 없으니 감사하고

십년을 하루같이 열심히 다닌 새벽예배에 몇년을 빠져도 감사하게 하시니

정말 정말로 감사하고

살아 있어서 모든걸 감사하게 하시니 감사하고

.

.

.

이렇게 머리를 쥐어 짜고 생각을 모아 모아

감사하기를 훈련받고 그 결과로 감사하게 된다면

과연 그 감사는 진심일까? 거짓일까?

.

.

.

억지로가 아닌 스스로 우러 나오는 감사

그 감사를 위해 우리는 세상에 보내졌으리라.

 

아직도 나는 많은 잘못을 저지르고 

꾸중받아야 할 주눅들은 아이처럼

그런 마음으로 살고 있는건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씩 왜 이렇게 마음이 시려 오는지를 주님은 아시리라.

이미 십자가의 사랑으로 나를 품어 주신 주님이시기에

나를 만드셨고 또 나를 만나 주시려고 기다리시는 주심이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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